속사정이 있어서 수술로 아기를 낳아야만 했다. 날을
잡아 아침에 아이를 낳았다. 위험한 수술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다른 큰 수술의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편치 않은 일이었다. 자연분만을 하면 아빠가
들어가서 함께 하고, 탯줄도 자르고 한다는 데, 나는 멍하니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의사가 짙은 녹색 천에 무언가 싸서 수술실에서
나와 위층으로 뛰어 올라 갔다. 슬쩍 보기에 아기의 발인지 손인지가 보였다. 나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뛰어 올라 가버렸다. 그 날 병원은
한가했고 출산하는 아이도 우리 밖에는 없는 걸로 알았는데, 겁이 났다. 우리 아이가 맞는지, 무슨 일인지.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데, 좀 있다가 의사가 말을 해 주었다. 우리 아이가 맞고, 별일 없다고 했다. 태어나면 바로 울어야 하는데 울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급했던
모양이었다. 잠깐 놀라게 하기는 했지만 건강하게 태어나 주었다. 정말 쉬운
게 없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보면, 참 잘나
보이는 녀석이지만 처음 뱃속에서 나왔을 때는 진짜 못생겼었다. 처음 아기와 마주했을 때,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놓지는 못했다. 두꺼비를 닮았으니
수영은 잘 하려나.
영아실
유리창 너머로 처음 만났다. 녀석은 물에 부은 두 눈 두덩이, 양 볼도 너무나 부어서 흡사 두꺼비 같았다. 피부는 뻘겋고 머리칼은 거의 없고 그마저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너무 부은 얼굴이라, 난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아빠인 나를 닮았다고 했다. 어디가 나를 닮았나 싶어 아무리 거울로 나를
살펴도 잘 모르겠더라. 그래도 다들 닮았다고 하니 왠지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이놈이 유리창 너머로 겨우 눈을 뜨더니 여러 사람 중에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는 지는 몰라도 신기한 순간이었다. 내 아들.
엄마들의 모성애는 본능적으로 갖게 된다고 한다.
아기가 아무리 못생겨도 이뻐 보인단다. 설령 모자라게 태어나도 마냥 이쁘기만 하단다. 그런데 부성애는 아닌 것 같다. 처음 만난 아기는 그냥 낯설었고,
다른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내가 아빠라고 하니 그런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빠로서 하나 둘 행동하다 보니 아기에게 이런저런 정도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기와 함께 얻게 되는 모성애와 달리, 시간과 노력으로 얻게 되는, 처음에는 머리에서, 그 다음에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 부성애인 것 같다.
처음에는 떡두꺼비 같이 못 생겨 보이기도 하고,
커 가면서 못나 보이기도 하고, 내 맘 같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고, 심지어 저 녀석은 누구를 닮은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빠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어느새 나에게도 부성애가 생겼다. 그런데 요즘은 이쁜 딸을 갖은 아빠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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