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때에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은 역사에 남을 정도로 잘 해 주었다. 그런 월드컵을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즐기고 있을 때, 우리는 병원에서 그 경기들을 봐야 했다. 그 때 알게 되었다. 평범하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그리고 깨달았다. 평범한 것은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항암치료라는 것이 사람을 무척이나 힘들게 하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무척이나 힘겨운 치료라 앞으로 아내의 임신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우연히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처가 식구들은 은근히 내가 바라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나도 그런 욕심을 낼 만한 상황이 아니라 생각했다. 원래 아이 욕심이 많지 않았던 나였지만, 그래도 결혼하면서 아이 없이 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평범하게 살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어쨌든 욕심 부린다고 가질 수 있는 인형 같은 것이 아닌 것도 아니고, 나는 마음을 접었다. 더 나빠지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더 나빠지고 싶지 않았다. 임신이라는 변화가 무섭기도 했다.
어디서 난 자신감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가 대단한 줄 알고 살았었던 모양이다. 그 힘겨운 시간들을 거치고 나니,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이 갓 넘은 나이라 어렸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그때까지 그런 큰 병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감기에 걸리고, 넘어져 피가 나고, 뼈가 부러진 것도 봤지만, 사람이 죽는 일은 아니었다. 암이란 병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지, 내 옆에서 보기 처음이었다. 그런 일은 비련의 주인공에게나 찾아오는 것인 줄 알고 살아왔었다.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울지도 않았던 걸 보면, 그만큼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내 아내에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이었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당황했고, 두려웠고, 도망가고 싶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 일부러 생각해야만 자세한 기억이 나는 시간들이 되었다. 우리 식구는 이제 평범하게 살고 있다. 나는 직장에 잘 다니고 있고, 떡두꺼비 같았던 아이가 잘 크고 있고, 아내도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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