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영을 배웠다

아기를 낳으면 생물학적으로 아빠 되겠지만, 그래도 아빠라는 사람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식구들의 건강과 안전을 챙기는 것은 아빠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일 것이다. 아빠로서 최악은 아이가 위험에 빠져 있는데도 그저 넉 놓고 있는 것이다. 무어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아빠가 되는 준비라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면에서 무어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낳기만 하면 알아서 잘 큰다고 하지만, 나는 어렵게 얻은 아라 그래도 최소한의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준비가 무엇일까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어렸을 때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다. 자갈이 언덕처럼 어마하게 쌓여 있는 곳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좋은 놀이터라는 것이 흔하지 않다 보니, 좀 위험한 곳에서도 곧잘 놀곤 했었다. 아니나 다를 까, 일이 생겼다. 그 자갈 언덕 아래로는 빗물이 고여 얕은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자갈언덕을 올라 아래로 달려 미끄러지듯이 자갈을 흘려 내리며 급히 멈추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여러 번 잘 되었는 데, 한번은 그 속도에 밀려 멈추질 못하고 그만 그 웅덩이에 빠져 버렸다. 얕은 웅덩이라 내 키보다 깊지 않아 금세 일어날 수 있었지만, 머리부터 물로 엎어진 터라 물을 엄청 먹어 버렸다. 어고 수영을 못했던 때라  폐로 물이 들어갈 때의 고통을 처음 느꼈다. 순식간에 물속에 잠겨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순간 큰 공포가 되어 버렸다. 

꼭 그 일 때문인지, 항상 물을 조심하라는 어머니 걱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이가 먹도록 수영을 배울 생각을 못했고, 그래서 물놀이도 쉽게 가질 못했었다. 설령 물놀이를 가더라도 그냥 발을 담그는 정도로 해왔던 것 같다. 어른이 돼서도 구명조끼를 입었더라도 발이 닿지 않는 깊이의 물에 들어가는 것은 항상 꺼리게 되었다. 굳이 나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였다. 하지만 물은 자주 접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여러모로 불편했다. 

그래서, 태어날 아이에게는 꼭 수영을 가르쳐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빠가 수영을 못하는데 아이와 함께 물에 빠지면, 아이를 구하기는 커녕, 나 때문에 아이가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끔찍한 생각도 들었다. 나도 아이도, 적어도 물에 떠서 구조를 기다릴 정도는 되어야 겠구나 생각했다.  

아이가 배 안에서 5개월쯤 되었을 때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35살 정도였으니깐10년 훨씬 넘게 차이나는 대학생 같아 보이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꽤나 창피했다. 괜스레 이 나이 먹도록 뭐 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수영을 곧잘 하는 다른 사람들 옆에서, 음파음파와 발차기를 하면서 언제 저렇게 하려나 하는 조급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침 출근 전에 새벽같이 나가서 수영을 하자니 꽤 힘들기도 했다. 전날 회식으로 술이라도 먹을라 치면 새벽수영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최악이 되지 않기 위해서, 기본적인 수영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던 내가 지금은 대견. 

보통의 아빠 정도라도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 창피함과 조바심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자유형으로 물에 조금 뜨는 수준이지만, 이전처럼 물놀이를 가서 그저 물 밖에서 발 만 담그고 있지는 않아도 되었다. 아들과 함께 가볍게 수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겨우 나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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