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머리말



나에게는 아들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생 시절에 가끔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에게 전화를 하곤 했었다. 뭐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갖고 싶은 것이나, 무슨 영화를 보자던지, 친구와 다퉜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단지 전화를 해주는 것뿐인데, 나에게 사랑 받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녀석이 무척이나 고마웠. 

나는 한참 전에 나쁘지 않은 아빠가 되기로 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속담이 있다. 이것은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뜻일 것이다. 꼭 미신을 믿어서는 아니지만, 손 없는 날을 잡아 이사 가는 풍습은 요즘도 있다. 손 없는 날은 운세가 좋은 날이 아니라, 운세가 나쁘지 않은 날이라고 한다. 이 풍습도 욕심 내지 않고 나쁘지 않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았던 삶의 지혜였을 것이다. 

지금 초등학교 거쳐 중학생이 된 아들을 보면서,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았구나 하고 지난 날을 돌아보려 한다. 이제 사춘기도 겪을 것이고, 더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나쁘지 않은 아빠가 되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나중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1. 접촉사고, 그리고 한강 유람선

일요일 아침이었다. 여의도로 출근하던 때였다. 여의도는 휴일에 많이 한산한 편이다. 아마도 평일에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서 일 것이다. 한산한 여의도로, 나는 평일에는 전철을 타고 다녔었지만평소와는 달리 차를 몰았다. 하고 있던 일에 문제가 생겼단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차로에서 좀 급히 서기는 했지만, 뒤의 차도 몹시 급했던 모양이다. 뒤차에게 받혀버렸다. 심하진 않았지만 출근을 해야 해서, 서둘러 사고처리를 하고 차를 정비소로 보내 버렸다. 흔하지 않은 출근이라서 정신이 없는 던 것일까, 아침부터 번거롭게 돼 버렸다. 아내가 나중에 알면 걱정할까 싶어서 집에 전화를 했다. 큰 사고는 아니고 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고, 아내도 그냥 알았다 했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출근해서 일이 생각했던 데로 잘 처리되어, 번거로운 출근을 한 보람이 있었다. 집에서 전화가 왔다. 일이 거의 마무리가  오후에 아내가 사무실 근처로 왔다. 난데없이 아내가 한강 유람선을 타자고 했다. 여의도 선착장이 가까워서 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좀 어색했다. 보통 서울 사람들은 매일 보는 한강에서 유람선까지는 잘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아내가 타자고 하 오래간만에 연애하는 분위기로 유람선을 탔다.  

문득 아내가 임신이라고 했다. 왜 유람선을 타자고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솔직히 기쁘기 보다는 얼떨떨했다. 텔레비전에 흔히 나오는 것처럼 마냥 즐겁기만 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난 아이를 바라지 않았었다. 

아내는 결혼하고 몸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자주 지게 되었다. 원래 나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걱정이 늘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아기가 생겼다니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 것이 사실다. 아내도 그런 마음이었는지 조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단다. 아마도 기쁘고 놀라웠겠지만 그만큼 겁도 났을 것이다. 나처럼. 그래서 아침에 가벼운 교통사고가 다른 때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이다. 아빠가 될 나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 

요즘은 옛날과 달 의학이 발달해서, 아이 낳은 것을 걱정하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평범함이 부러운 일이었다. 몸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는 임신은 절실하지만 비장한 일일 수 있다. 아내가 몸을  후로 한동안 평범하게 지내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기쁨과 비장함이 함께 온 이었다. 

2. 평범하다는 것

어렸을 때부터 없이 자라다 보니 은근히 욕심이 많았다. 차마 용기가 없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 그러서인지 고등학교 때부터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고 싶었고 대학교 때도 그 은 계속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왔.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종교적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취직도 했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다. 딱 2년만 직장에 다니면서 작은 돈이라도 장사 밑천을 만들어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 원래 목표였다. 2년 동안 월급을 모으면 리어카 장사라도 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인지, 의지가 약했던 것인지, 원래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2년을 일하다 보니 어느새 직장생활에 젖어 들었고, 도전하고 싶었던 목표는 잊혀 졌다. 도리어 직장에서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것이 더 쉽겠구나 하는 치기까지 생겼다. 이제까지 그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원래 의지가 약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 때 직장을 그만두었으면 어떻게 되었을 까 싶기도 하다.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의 직장생활은 나의 젊은 혈기를 발산하기에 좋은 터가 되어 주었다. 혼사 쓰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돈도 벌고, 한 여자를 만났고 결혼도 생각하게 되었다. 흔히 듣고 보는 것 같은 그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참 쉽게 평범하게 살았다. 평범한 삶은 쉽게 얻어지는 것만 같았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도전하지 고, 내가 평범한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머물러 있는다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금세 알게 되었다. 결혼하고 딱 여섯 달이 지났을 때였다. 어느 토요일 아침, 아내는 전화를 받고 울고 있었고, 나는 그 전화에서 아내가 큰 병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유명하다는 내과에서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조직검사까지도 했어야 했던 것이다. 불안해하는 아내를 친정으로 데려 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몰랐다.